2018 조선통신사부산축제
행사소개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의 평화를 위한 국가 사절단 
 
한양에서 쓰시마까지의 행렬에 일본과 조선은 '통신(通信)' 이란 말처럼 신의를 나누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절을 조선통신사라고 한다. '통신(通信)'이란 '신의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은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이 났지만, 이 전쟁은 조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조선으로 출병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사명대사 유정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하였다. 이후, 도쿠가와(德川)바쿠후(幕府)는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쇼군(將軍) 일대의 의식'으로 매우 중요시하였다. 
 
1607년부터 1811년 까지의 약200여년 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문하였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경사나 쇼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여,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 제2회 방문은 교토(京都)의 후시미(伏見)에서, 제12회 방문은 쓰시마(対馬)까지 였으나, 그 외에는 모두 에도까지 왕복하였고 제4회 부터 제6회까지는 닛코(日光)에도 방문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館)의 삼사(三使)이하, 화원(画員)·의원(医院)·역관(駅官)·악사(樂士)등 총 40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대 사절단이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을 출발하여 일본의 수도인 에도(江戸)까지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약3,000㎞의 여행이었다.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船團)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活动介绍

朝鲜通信使是韩 ·日两国为和平的国家使团

通过从咸陽到对马岛的游行中 展现日本和韩国“通信”一词一样分享信义

从朝鲜派遣到日本的使团叫朝鲜通信使.“通信”的意思就是分享信义

通过朝鲜通信使的交流建立了信赖 可以称为朝鲜和日本的和平和睦邻好友的象征
豊臣秀吉的朝鲜侵略由于豊臣秀吉的死去而终止 但战争却造成朝鲜的荒废.没有向朝鲜出发的德川康佳通过和
四瞑大師惟政的交流恢复了和朝鲜的国交.以后,德川幕府对朝鲜通信使访问日本看做“将军一代的仪式”非常重视

从1607年到1811年约200多年间朝鲜通信使访问了日本12次,在德川幕府有庆事或将军的继承时都会访问,传达朝鲜国王的国书和接收德川幕府将军的
答书.第2回访问到京都的伏見,第12回到对馬以外,其余都到江户往返 从第4回到第6回还有访问到日光的痕迹

朝鲜通信使是由正使.副使.從事館的三使以下,医院.樂士.等400名到500名的大使团
从朝鲜的首都漢陽出发到日本的首都江户往返需半年约3,000㎞的旅行.旅途中通信使和日本的很多文人们一起分享笔谈 互相交流了解两国文化.朝鲜通信使的船團游行受到日本的民众们热衷的欢迎日本各阶乘的人们也受到了很大的影响